- 거의 20년의 집필 시간을 거쳐 3편의 단편으로 완성된 이야기는 유기체가 없는 로봇의 세상에서 시작된 균열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배경과 소재만으로도 SF팬에겐 가슴이 뛰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사실 1부를 읽으며 느낀 건 이 정도 분량의 단편소설로 이런 압도적인 소재를 다루기엔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1부는 전체적으로 진중한 소설보다는 우화같이 느껴질 정도로 단순한데, 배경과 사건 설명에 할애하기도 부족한 분량이다보니 독자가 곱씹을 여유없이 허겁지겁 섭취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소설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분량을 확 늘려 장편으로 했어야 할 소재를 너무 압축한 듯 하여 흥미진진하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좀 아쉬웠다. 소재의 무게에 짓눌린 느낌. 2부와 3부는 설명할 거리가 줄어드니 그래도 좀 여유있게 진행되긴 한다. 1, 2, 3부 분위기가 다 사뭇 다른데, 물론 집필 시기가 크게 차이나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줄거리가 이어지면서도 서로 다른 분위기를 낸 게 결과적으론 좋았던 것 같다. 아, 근데 3부 마지막 결말은 아무래도 이 깊은 담론을 마무리지어야 하기에 그렇다지만 서사적으로도 작가가 하고자 하는 주제로서도 좀 급작스럽고도 허탈한 감이 있긴 하다. 뭐, 그래도 전반적으론 꽤나 재밌었고 로봇이 지배하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재미난 설정들도 나름 참신하고 귀여웠다. 전체적으로 쉽고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읽는데 3시간밖에 안걸렸으니 순식간에 몰입해서 본 셈이다. 한국 SF문학에 대한 편견도 있고 그랬는데, 적어도 재미 측면에선 확실히 그 편견을 깨 줬다.